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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성수동 로드투어] 공간기획으로 탄생한 비밀의 정원 카페 ‘오르에르’



오래된 듯 하지만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수동에 다양한 사람과 독특한 공간이 모이고 있습니다. 성수동은 곳곳에 공장이나 카센터 등 투박한 시설이 많은 곳이지만 단순히 인더스트리얼 분위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성수동 터줏대감 신도리코에서는 2017년 시리즈 기획으로 성수의 문화와 인기 스팟을 소개하는 ‘성수동 로드투어’를 진행합니다.






4월에 소개할 곳은 카페 ‘오르에르’입니다. 온 길거리에 푸름이 돋아나는 봄에 잘 어울리는 공간인데요. 사실 성수동 카페거리 특유의 문화를 선도했다 일컬어지는 카페 ‘자그마치’를 기획·운영하는 공간기획 & 브랜딩 회사에서 만든 곳입니다. 차와 음료를 팔고 머무는 공간을 넘어 방문객이 서로 소통하고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오르에르의 비결은 무엇인지 김재원 대표를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자그마치(Zagmachi)와 오르에르(OR.ER.), 디자인 편집샵을 운영하고 있는 스튜디오 제트지엠씨(ZGMC) 대표 김재원입니다. 공간기획 및 브랜딩, 컨텐츠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2. 카페 ‘오르에르(or.er)'는 상가주택을 개조해서 그런지 독특한 구조가 특징입니다. 이 장소에 오르에르를 기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르에르는 성수역 3번출구 근처에 있는 자그마치에 이어 저희들의 두 번째 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자그마치를 운영하면서, 보다 안정적이면서 폭넓은 일을 할 수 있는 문화적 거점이 필요했고, 성수동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연무장길에 주목하게 됐어요.


연무장길은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혁거리로 부르고 있는데, 기원을 따져보면 성수동의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필요에 의해 계획된 ‘소방도로’ 였거든요. 그래서인지 길폭도 너무 넓지 않아서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들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이 거리를 좀 더 재미있는 거리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때마침 좋은 건물이 있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좌) 오르에르가 생기기 전 상가주택 모습 (우) 카페 오르에르 현재 모습




 (좌) 상가주택 뒷마당 (우) 카페 오르에르 현재 모습



이 곳은 구조도 매우 독특했어요. 건물 앞부분은 상가이고 뒤 부분은 주택을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었거든요. 오르에르가 생기기 전에는 총 9세대의 상가와 주택이 공존하는 상가주택이었습니다. 78년도에 지어져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세월이 깃든 독특한 건물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흥미로웠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에 오르에르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 오르에르 1층 카페 공간



3. 오르에르 건물 공간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요?


오르에르 건물은 지하를 포함해서 1,2,3층의 네 개의 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하는 디자인갤러리로 기획되었고, 1층은 정원이 멋진 카페 공간, 2층은 디자이너들이 언제든지 와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인 라운지, 3층은 컨셉 스토어 및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 공간은 현재는 손님이 몰리는 주말에만 오픈하고 있는데요. 올해 안에 이 곳을 야간학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야학이라고 해서 전문가를 모셔 책을 보고 이런 내용보다 어떤 분야의 덕후들이 모여 새로운 것을 공유하고 배우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위) 계단을 올라가 보이는 2층 공간 전경, 무언가를 함께하기 좋은 공간이다

(아래) 상가주택의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블록화된 카페 공간



오르에르는 여느 카페와 달리 입구가 복도를 향해 있어요. 출입구도 하나로 만들어서 각 층별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오르에르 건물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환하게 열린 정원 공간이 드러나는데요. 카페 오르에르에서 가장 신경 쓴 곳이 바로 이 안뜰입니다. 카페를 방문한 고객들이 의외의 공간을 지나 정원을 마주하는 놀라움을 주고 싶었어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쪽 정원의 창고를 개조한 작은 공간이에요 이곳은 팝업공간으로 주로 사용합니다. 각각의 공간이 너무 고정적인 콘텐츠로 고정되는 것 보다는 다양한 기획들을 담아서 늘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했던 점이 지금의 오르에르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 오르에르의 팝업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4. 1년 여 간의 기획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데요. 공간 기획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간기획은 부동산의 매입 또는 임대부터 공간 브랜딩, 콘텐츠 구성, 운영 프로그램, 자본 등 복합하고 종합적인 작업을 총괄하는 일입니다. 오르에르 저와 저희 사무실에서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면을 담당하고 진행했어요.


하지만 시공 단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시간, 비용적 손해를 보기도 하고 에어컨 공사가 잘못되어 화재가 나거나 배관이 잘못되어 침수가 발생하는 등 예기치 못한 경험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씩 문제를 바로잡고 풀어가며 공간을 구성하다 보니 이 곳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습니다. 오르에르는 상가주택을 개조해 방의 형태로 구성된 공간이 많은데요. 모든 공간의 콘셉트에 맞게 컬러, 벽지, 창문유리 등을 다 기획했죠. 심지어 계단난간, 하구수 뚜껑까지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직접 고르고 디자인해서 오르에르가 완성됐습니다. 저희가 고집했던 디테일을 알아봐주는 분들을 만나면 고생한 보람을 느낀답니다!





 성수동 특유의 문화를 살려 외관은 황동 금속이 주는 느낌을 살렸다

지역문화와 연계하고자 자재는 대부분 성수동에서 수급했다



5. 카페를 ‘오르에르(or.er)’의 이름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교감하는 소통의 공간’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나 활동을 목표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오르에르(OR.ER.)는 ‘~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에서 따온 브랜드 네임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공간이에요. 크게는 성수동에 머무는 엔지니어, 장인들, 디자이너 등을 위한 만남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산업혁명 이후 파리가 카페문화를 통해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앞서 2층을 야학공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오르에르의 공간에서도 팝업스토어 등 다목적 문화활동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카페 자그마치에서 알게 된 독립출판업 관계자 분들과 함께 진행했었어요. 인테리어보다 사실 그 안에 어떤 콘텐츠가 있는지가 이 공간에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콘텐츠를 꾸준히 고민하고 개발하다보니 다양한 문화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그마치’로, ‘오르에르’로 모이더라고요.




 오르에르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 & 콘텐츠 전시 현장



6. ‘오르에르’는 성수동 카페 문화의 시초라 부를 수 있는 ‘자그마치’와 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그마치와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자그마치도 마찬가지지만 오르에르의 공간은 사람들이 찾아와 같이 즐기면서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이 찾아주는가가 중요하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취향의 문제는 오르에르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가치라 말할 수 있어요.


저희들의 기획 의도는 자그마치의 복제판인 ‘자그마치2’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취향이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자그마치가 남성적이고 거친 것에 매력이 있다면, 오르에르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것에서 자신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7. 두 공간 모두 성수의 문화에 잘 녹아 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성수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건국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서울 동북쪽 지역을 방문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부근은 사람을 만나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더라고요. 성수동에도 자재나 재료 때문에 방문하곤 했는데 딱 살 것만 사고 나가는 곳이었죠. 이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느끼는 성수는 ‘장인의 거리’입니다. 신도리코처럼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기업과 전문가들이 오래 자리잡은 곳이죠. 저희들이 처음 성수동에 관심을 가질 때는 이런 매력들이 잘 드러나 있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성수동은 70년대 경제성장기의 흔적도 있고, 첨단 IT기술의 모습도 볼 수 있지요. 이런 콘트라스트는 대부분 새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저희들이 주로 하고 있는 공간기획 분야도 결국 이질적인 개념을 조합해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수동에서의 출발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팔방미인 미용실과 노래연습장 사이에 위치한 오르에르는

성수동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울어지기 위해 이전 건물 외관을 최대한 살렸다



8. 오르에르를 찾은 손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누구인가요?


사실 자그마치는 성수동 카페로 정말 초창기에 자리잡은 곳이거든요. 그 전에는 성수동에는 개인 카페가 거의 없었죠. 그래서인지 자그마치 단골 분들 중에서는 각 분야에서 저명하신 분들도 꽤 많이 모였어요. 


자주 봬서 얼굴이 익은 손님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프로파일러 분이셨어요. 연이 닿아 범죄 관련 강의도 들을 수 있었고 성수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많이 쌓았죠. 교수님은 오르에르가 생긴 뒤로는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하실 때 꼭 여기를 방문해주세요. 인쇄 공장을 개조한 자그마치는 확 오픈 된 공간이라면 여기는 곳곳에 위치한 방의 형태가 아늑한 느낌을 주거든요.






9. 대표님이 추천하고 싶은 오르에르 메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따뜻하게 해가 비추는 후원에서 스트로베리티를 아이스로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해요. 이 공간과 참 잘 맞는 맛을 지녔어요. 얼그레이 케이크와 얼그레이티가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오르에르의 케이크는 전속 계약한 파티쉐를 통해 공수 받고 있어요. 옆 건물에 케이크 주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오르에르만의 케이크 시리즈를 만드는 것을 늘 연구해요. 케이크는 성수동에서 저희 가게가 제일 맛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 아이스 스트로베리티 & 딸기 케이크와 함께한 후원의 여유

(아래) 오르에르 방문객 인기 메뉴 얼그레이 케이크 & 얼그레이티



10. 앞으로 성수동이 어떤 공간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성수동의 매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이는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그마치를 시작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영향을 주고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확산된 성수동 프로젝트가 곳곳에 존재하고 있거든요. 이것이 저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와 더욱 밀접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그리는 성수동의 모습은 ‘장인의 정신이 잘 녹아있는 재미있는 동네’입니다. 브로드웨이와 같은 극장들과 재미있는 디자인공방, 첨단 IT기술이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윤기 있는 마을입니다. 이런 동네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죠. 더 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게 해야 하고 그런 부분에 오르에르와 자그마치가 일조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머물고 싶은 카페, 다시 가고 싶은 공간의 비결은 단순히 음식의 맛이나 카페 디자인만이 아닙니다. 그 공간만이 지닌 스토리와 방문객을 배려한 구성이 핵심이 아닐까요? 성수동이란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흡수해 자신이 공유하고 싶은 꿈을 곳곳에 배치한 오르에르처럼 말이죠. 카페의 기획부터 소통까지 과정을 한 공간에 담은 오르에르를 만나러 연무장길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