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웨딩드레스가 하얀색인 이유는? <웨딩드레스의 역사>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순백의 미를 보여주는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신부의 상징인 하얀색 웨딩드레스는 과연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을까요? 여러 가지 색상 중 신부는 왜 하얀색 드레스를 입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페테르 루벤스, 웨딩드레스를 입은 헬레나 푸르망, 1630, 목판에 유채


화려한 색상의 웨딩드레스


중세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신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당시 문화를 선도했던 유럽 왕실은 금색 또는 은색 드레스를 입었는데요. 하얀색같이 수수한 색상은 자신들의 부유함, 지위를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급 원단과 섬세한 수공업이 필요했고 이는 평민들이 감히 따라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유럽 왕실은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더 화려하고 값비싼 드레스를 입었던 것이죠.


 

▲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결혼식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하얀색 웨딩드레스


1804년, 화려하고 사치스럽기만 했던 왕실의 결혼식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레이스가 달린 하얀 드레스에 오렌지 꽃으로 만든 리스를 쓰고 등장한 것인데요. 여왕이 걸어 나왔을 때 왕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당시 하얀색은 ‘애도’와 관련된 색이었기 때문인데요. 냉랭한 왕실의 반응과 달리 국민들은 여왕의 하얀 드레스에 열광했고 이 같은 스타일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전파되는 데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시대의 흐름을 깨고 하얀색 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은 산업혁명과 정치적 변화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왕족과 귀족들이 점유하고 있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은 중산계급인 젠트리(Gentry) 계층이 중요한 정치적 세력이었는데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반 국민들은 왕실과 왕족을 사치스럽고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하얀색 드레스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웨딩드레스에 대한 인식 변화


산업혁명을 거치며 더욱 풍족해진 물자와 경제력은 일반 영국 국민들에게도 하얀색 웨딩드레스가 보편화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전까지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종적이고 순결한 신부의 상징으로 쓰였는데요. 여권신장운동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해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며 하얀 웨딩드레스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수단으로 발돋움합니다. 이로 인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은 계급, 계층과 무관하게 가장 주목 받을 수 있는 날로 인식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 가지미르 말레비치, 결혼식, 1907, 캔버스에 유채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부’라는 것은 러시아의 화가 가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인 <결혼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남성들이 그림에 등장하지만 누가 신부의 아버지이고 신랑인지 구분하기 어려운데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가 다른 남성들보다 앞에 위치하며 가장 큰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웨딩드레스에 대한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하얀색 드레스는 가장 대중적이며 신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해외에서는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색의 드레스를 입는 신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웨딩드레스=하얀색’이라는 공식은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