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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열정을 꽃피운 건축가 루이스칸의 건축물

 

 

안녕하세요, 신대리입니다.

오늘은 건축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가온건축의 임형남 대표님이 신도리코 사보에 기고해 주신원고인데요, 건축가 루이스 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라 블로그에도 소개합니다.

 

고전과 근대 건축의 접점을 향해 나아가다

 

50대에 비로소 건축가로서 빛을 보기 시작해 74세까지 불꽃같은 건축 열정을 꽃피웠던 루이스 칸. 그는 짧다면 짧은 20여 년 동안 고전 건축 원리를 바탕으로 솔크 연구소,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뚜렷하게 구축해나간다. 이후 근대 건축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새롭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을 계속 한다. 고전과 근대 건축의 접점을 찾아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평가 받고 있는 루이스 칸의 작품을 만나본다.

 

모더니즘의 서막이 열리다

 

20세기는 신이 사라진 시대다. 또한 그간 인간이 절대 불변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혹독하게 반성해보고 검증하는 시기였다. 자유로워진 인간이 중심에서 이탈되면서 발생하는 혼돈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던 시대이기도 하다. 건축도 시대와 궤를 같이했다. 중심은 사라졌고, 모든 것이 중심이거나 어디에도 중심이 없는 건축이 만들어졌다. 보편적인 공간과 입면(立面)이 만들어지고, 건축 역시 공작물(工作物)처럼 대량 생산과 대량 복제가 가능하다는 신념 속에서 새로움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싹텄다. 그야말로 20세기엔 그간의 질서와 형식이 모두 부정되었다. 새로운 형태 즉, 모더니즘 건축이 세계 건축을 지배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모더니즘이 막 시작되던 1901년에 태어난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을 접한 건 대학 때였다. 학생 중 절반이 F학점을 받아도 아무런 반항을 못하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양의 과제를 부여받아도 토를 달 수 없던 엄격한 교수가 한 분 계셨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거의 신이었던 분이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실력과 무척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어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런 그가 현대 건축에 관한 수업 중, 우리가 아는 많은 건축가를 쭉 설명하다가 루이스 칸에 이르러 “그는 건축가 중의 건축가(Architect of Architect)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때가 80년대 중반이었으니 그가 사망한 지 10년 정도 지났고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나 라이트, 혹은 안도 다다오, 마리오 보타 등이 인기였던 시절이었다. 들어는 봤지만 별로 익숙지 않았던 루이스 칸의 작품이 궁금해 그길로 <A+U>라는 일본 잡지 번역서를 읽었다. 거기엔 그의 필생의 역작인 솔크 연구소,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등이 펼쳐져있었다. 

 

루이스 칸의 지향점, ‘솔크 연구소’

 

<솔크연구소 전경>

 

루이스 칸은 무척 늦게 완성된 사람이다. 그가 예일 대학에 건물을 설계한 53세를 그의 건축 원년으로 본다. 1953년은 모더니즘 건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고 모든 건축적 논의가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던 때였다. 하지만 그는 질서와 형식을 부정하는 모더니즘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했다. 즉 비례와 대칭을 앞세운 고전 건축 원리를 추구한 것이다. 루이스 칸이 원칙을 중시한 데에는 보자르식 건축 교육이 있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수학할 당시 스승이었던 폴 크레(Paul Cret)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출신으로, 정형화된 방법과 과정을 통한 설계 방법론을 중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는 루이스 칸의 생각과 경험이 오롯이 응축된 건물이다. 공동 작업용 실험실과 개인 연구실은 수평으로 명확하게 분리되고, 개인 연구실은 사각형의 기본 형태에 돌출된 삼각형 모양의 평면을 덧붙여 대칭과 반복이라는 고전적 건축어휘를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루이스 칸은 모든 연구실에서 남측에 형성된 창으로 태평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용자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는 그의 건축적 태도를 보여준다.

 

 

재료와 형태에 혼을 담은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평면도>

 

 

 

 

루이스 칸의 건축은 외관만큼 재료 또한 무척 단순하다. 어려운 어휘나 문법, 혹은 문학적 기교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고졸한 문장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어딘가 힘이 있어 신비하고 영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건축 과정에서 물질이 가지고 있는 영혼에 대해 깊은 이해와 성찰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천장>

 

그의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Parliament House of Bangladesh) 역시 그런 수작 중 하나다. 국회의사당을 자세히 보면 흔히 쓰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콘크리트 건물이라고는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빛을 뿜고 있다. 물이 귀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인공 호수 위에 묵묵히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하나의 신전(神殿)처럼 보인다.

 

 

 

이 건물 역시 루이스 칸의 형태와 대칭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앙에 놓인 회의장이 중심이 되고, 그 주변 사무실 동이 경계를 형성하며 에워싼다. 또한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사각형, 삼각형, 반원, 3/4원 등의 형태로 구성된 공간들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평면과 입면(立面)을 가득 채운 가장 단순한 형태의 원, 삼각형, 사각형은 고전을 통해 가장 본질적인 형태에 다다른 칸의 건축적 완결성을 반영하며, 그것이 이루는 각각의 공간에는 영원을 상징하는 빛이 성스럽게 고여 있다.

 

 

고전 어휘와 근대 건축의 만남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의 기하학적인 원형 서고 개구부>

 

루이스 칸이 평생 고전주의에 입각한 건축을 지향한 것만도 아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다양성을 중시한 근대 건축과 보자르식 건축론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이 경험은 그가 고전주의 원칙을 실현하면서도 근대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건축물을 선보이는 토대가 된다.

 

 

 

 

 

 

대표적 건물이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Philips Exeter Academy Library)이다. 이것은 건물 중심축을 기준으로 대칭한다는 기존 원칙 속에서 정연하고 위계가 분명한 질서를 띤다. 단위 공간들은 반복적인 패턴을 보이거나 교차되는 축에 대응하는 중심 공간과 부속 공간으로 구분된다. 건물 외관은 단정한 붉은 벽돌로 되어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칸은 고전 어휘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근대적 프로그램에 맞는 새롭고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도서관의 어둡고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빛이 한 데 모이는 커다란 중정에 이르게 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은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동선과 구조체이다.

 또 대칭으로 배치된 원형의 서고 개구부는 도서관 내부의 층별 위치를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어주고, 그 서고에서 책을 꺼내 창가로 가져가 읽도록 하였다. "도서관이란 어두운 곳에서 책을 꺼내 밝은 곳으로 가서 읽는 곳이다."라는 칸의 말처럼 건축을 통해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도서관이 수행하는 기능을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루이스칸은 뒤늦게 건축가가 되었지만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으로 창의적인 건물들을 남겨 건축가 중의 건축가로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신도리코 본사 건물도 독특하지만 루이스칸의 국회의사당이나 아카데미 도서관 건물도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건축의 예술미를 한 단계 높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

 

루이스칸이 신도리코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중국 칭다오 1기 공장>

 

 

서울 본사처럼 민현식 교수가 맡은 신도리코 칭다오 공장은 루이스칸이 이야기한 '처음'을 되새기는 마음가짐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민 교수의 첫 해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이 '처음' 이라는 말이 더 의미가 있었다고도 보여지네요.

 

 "억지로 아름다운 사물을 만드는 일은 비열한 짓이다. 그것은 총체적논점을 흐리게 하는 최면술과도 같은 짓이다. 나는 아름다움이 하룻밤 새에 창조된다고 믿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고대적 처음'과 함께 출발하여야 한다. 고대적 처음은 파에스툼과도같다. 나에게 파에스툼은 아릅답다. 그것은 파르테논보다 덜 아름답기 때문이다. 파에스툼으로부터 파르테논이 나왔기 때문에 그러하다. 파에스툼은 굵고 짧으며, 그것은 확인된, 그리고 섬세한 비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대단히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것으 아름다운 시간이며 우리는 아직도 그 시간에 살고 있다."

 

- 건축가 루이스 칸-

 

 

이 덕분인지 신도리코의 칭다오 공장은 마치 루이스칸의 솔트 연구소처럼 공장같이 않은 느낌을 자아내지 않나요? ^^ 건축은 알면 알수록 심오한 세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더 멋진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상, 신대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