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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따뜻한 위로의 악수를 건네다,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세계 대전 이후 난해한 추상미술이 주를 이룰 때, 샤갈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로 구성된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사랑과 화해', '고향과 추억'이 담긴 샤갈의 소박한 키워드는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피폐해진 현대인의 삶을 달래주는데요. 샤갈의 따뜻한 위로가 담긴 작품으로 지친 삶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요?



▲ 에펠탑의 신랑신부(1913)_조르주 퐁피두센터



예술과는 무관한 어린 시절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내며 고국을 그리워했습니다. 샤갈이 남긴 글 가운데 ‘러시아 제국도 소련도 모두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는 신비에 싸인 낯선 사람일 뿐이다.’ 라는 말은 그가 고국에 대해 지녔던 서글픈 감정을 대변합니다. 샤갈은 1985년 98세로 생을 마감하며 비교적 최근까지 예술활동을 했던 작가인데요. 그는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러시의 출신의 유태인이었습니다.



▲ 하얀 책형(1917~1918)_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의형제와 함께 생활했던 샤갈은 예술과 전혀 무관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샤갈은 19세 무렵 고향 ‘비테브스크’의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형식에 치우친 학교 교육은 샤갈의 재능에 미치지 못했고, 이것은 샤갈이 예술의 도시 파리로 떠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파리로 간 샤갈은 몽파르나스의 ‘라 뤼슈’라고 불리는 예술가촌에 정착해 본격적인 작품세계를 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능한 젊은 예술가들이 매력적인 도시 파리로 몰려들던 시기, 샤갈의 예술혼도 파리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파리에서 빛나는 예술의 태양


오늘날 신참 예술가들이 동경하는 도시가 ‘뉴욕’인 것처럼 당시의 ‘파리’는 젊은 예술가들의 성지였습니다. 샤갈이 ‘당시 예술의 태양은 파리에서만 빛나고 있었다’고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한 것을 보면 당시의 파리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 파리는 트렌드를 이끄는 무수한 예술가들의 거주도시로 유명했습니다.



▲ 창문으로 보이는 파리(1913)_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에콜 드 파리’ 파에 속하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키슬링, 몬드리안, 후지타 츠구하루 등의 예술가들을 통해 예술 도시인 파리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에콜 드 파리’라는 말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국외 예술가들을 부르는 호칭이며 미술의 중심지로서 파리의 위상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샤갈은 파리에서 슬라브(교량, 건축물 등 구조물이 수평인 판 부분)의 환상적인 느낌과 유대인 특유의 신비성을 융합시켜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했습니다.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은 에펠탑과 파리 시내가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자리를 잡은 화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요.



▲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1913~1914)_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맵시 있는 신사 차림의 피사체는 7개의 손가락으로 이젤 위에 놓인 그림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피사체인 화가가 그림 속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샤갈이 스스로의 걸작으로 꼽은 <러시아에게, 당나귀에게, 그리고 타인들에게>라는 점도 눈 여겨 볼 부분입니다.



▲ 도시 위에서(1914~1918)_국립 트레티아코프 갤러리



샤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시 위에서>에는 아내 벨라 로젠펠트와 샤갈이 꼭 끌어안고 새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향인 ‘비테브스크’에서의 소박한 생활과 아내가 된 벨라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작품인데요. 1915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하게 된 샤갈은 아내 벨라를 모델로 자주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산책>은 사랑으로 가득한 충만한 행복감을 드러낸 작품입니다.



▲ 산책(1917~1918)_국립 러시아 미술관



샤갈의 작품에 드러난 감성 키워드


샤갈은 파리에 머물면서 큐비즘과 밝은 색채 표현을 살려 완성시킨 <나의 마을>과 고향인 러시아를 주제로 한 작품 몇 개를 더 남겼습니다. 녹색 얼굴의 남자와 산양이 유달리 인상 깊은 <나와 마을>은 샤갈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이 작품의 근원적 풍경은 ‘소세계’ 입니다.



▲ 나의 마을(1911)_뉴욕 현대 미술관



녹색의 남자는 샤갈 자신을 의미하고, 양의 젖을 짜는 여성이나 쟁기를 든 농민들은 그가 고향에서 보았던 친근하고 익숙한 풍경을 그린 것인데요. 그림을 그릴 당시 샤갈은 파리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흔히 접하지 못했던 도시 풍경을 그릴 법 하지만, 샤갈의 그림이 추억 속의 고향을 향하고 있던 것은 독특한 점 입니다.



▲ 바이올린 연주자(1911~1914)_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그의 작품 중 <바이올린 연주자>는 ‘종교적 화해’의 의미가 깃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샤갈이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그린 그림으로 화폭 속의 바이올린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황량한 러시아의 고달픈 예술가를 비유하고 있기도 하며 유대교(Hasidism)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춤과 음악을 통한 융화를 추구하는 유대교의 종교적 키워드가 작품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유태인이었던 샤갈은 종교적 의미를 작품에 자주 부여하였는데요. 그의 그림에서 ‘융합과 조화’의 감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 또한 그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 생일(1915)_뉴욕 현대 미술관



샤갈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사랑 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 스민 감성 키워드 덕분인데요. 따뜻한 색채로 사랑과 추억을 전하는 샤갈의 작품은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빛 한 줄기를 선물해줍니다.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작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이번 글을 통해 천천히 감상해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