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불안과 고독을 표현하는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서양 미술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절규>라는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것입니다. 한 남성이 양 볼에 손을 대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상을 그린 그림 <절규>는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인데요. 뭉크는 강렬한 색채로 인간 내면의 불안을 날카롭게 표현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화가입니다. 뭉크의 다양한 작품과 화폭 안에 담긴 숨은 의미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 절규(1893)_뭉크미술관



날카로운 감수성이 탄생하기까지


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 로이텐에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작가들은 인간의 내부를 바라보고 불안에 가득 찬 어둠의 세계를 즐겨 그렸는데, 날카로운 감수성을 가진 뭉크도 그 시기 작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뭉크는 특히 생명의 신비와 죽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뭉크는 어린 시절에 결핵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누나 역시 결핵을 앓다가 15살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은 어린 뭉크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됐고,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이 작품의 주제가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죽은 어머니(1900)_쿤스트할레 브레멘



훗날 뭉크는 “나의 아버지는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이었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나는 광기를 물려받았다. 공포, 슬픔 그리고 죽음의 천사는 내가 태어난 날부터 나의 옆에 서 있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는데, 그것은 병약함과 정신병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삶의 모습을 그리다


뭉크는 노르웨이의 미술공예학교에 다니면서 미술의 기초를 다진 후 파리로 진출했습니다. 파리에서 고흐와 고갱, 로트렉이 그린 최첨단의 그림을 접하고 “앞으로는 독서하는 인물이나 뜨개질하는 여인들을 그릴 것이 아니라 호흡하고,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며, 사랑하는 생생한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뭉크의 절정기였던 1890년대에 그는 유채화나 판화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며 ‘생명의 프리즘’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일련의 시리즈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절규>도 이 시리즈 중의 하나이며 이 외에도 <질투>, <병실에서의 죽음>, <생명의 춤> 등이 유명합니다.




▲ 병실에서의 죽음(1893)_뭉크미술관



1893년에 그려진 <절규>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합니다. 뭉크는 인물을 S자 모양으로 비틀어 경악하는 자신과 현대인의 불안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절규>를 변형시킨 작품의 수가 50여 종이 넘는다는 사실을 보면 뭉크가 이 작품에 대해 얼마나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춤>은 뭉크의 1899~1900년 작품으로 그림의 무대는 뭉크의 화실이 있던 노르웨이 오슬로 교외의 오스골스트란 해안입니다.




▲ 생명의 춤(1900)_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이 작품 가운데에 있는 붉은 옷차림의 여자는 당시 뭉크의 애인이었던 ‘툴라’를 묘사한 것입니다. <생명의 춤>은 여름 축제의 무도회를 그린 작품으로 인물의 대담한 배치, 색채의 강렬함, 충만한 생명감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서 뭉크의 예술은 하강선을 그리게 됩니다. 1909년 무렵부터 초기 작품들에서 보이던 긴장감이 사라졌고 과거의 기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뭉크는 과도한 음주와 싸움 등으로 불안 증세를 더욱 심하게 호소하며 요양 치료를 받게 됩니다. 8개월간의 입원 치료 후 비관적인 느낌의 작품이 줄게 됐고, 다양한 색채를 담은 작품들을 그리며 미술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44년 1월 뭉크는 80세의 생일을 맞이한 직후 생을 마감했으며 모든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절규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2004년 8월 22일 뭉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절규>와 <마돈나>가 도난을 당했습니다. 당시 뭉크의 <절규>는 2점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6년에 비로소 뭉크의 작품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에도 이와 비슷하게 뭉크의 작품이 도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신속하게 도난 사건을 해결하고 작품도 무사히 되찾은 적이 있습니다.




▲ 마돈나(1894)_뭉크미술관



뭉크의 <절규>는 근대 미술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그림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담았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림에 담긴 일상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그러나 대중의 공감과는 다르게 <절규>는 뭉크가 앓았던 지병인 ‘공황발작’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 작품입니다.




▲ 불안(1896)_뭉크미술관



훗날 뭉크는 작품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 쪽에는 마을이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절규를 느꼈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 말을 남긴 후 탄생한 작품이 바로 <절규>입니다.


요동치는 선으로 표현한 배경과 피사체, 그와 대비되는 두 사내의 온전한 모습은 절규의 감정이 뭉크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의 모사작 속에는 중앙의 구름 부분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글자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미친 사람뿐이다’라고 써있습니다. 뭉크가 이 말을 썼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카를 요한의 저녁(1892)_라스무스메이어 컬렉션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불안을 담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은 10월 1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굴곡이 많았던 뭉크의 인생을 알고 난 뒤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의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의 시 뭉크 _ 에드바르드 뭉크전


   기간: 2014.07.03() - 2014.10.12()

   장소: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 2전시실

   가격: 성인 15,000 / 청소년(13-18) 12,000

          어린이 (36개월이상-12) 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