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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뮤지엄 건축학개론] 역사의 중심에서 예술을 외치다 ‘호주 국립 박물관’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관람하는 일은 조금 지루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주 국립 박물관은 역사에 도발적 예술성을 더해 250여년에 불과한 호주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예술을 외치는 호주 국립 박물관의 매력에 함께 빠져봅시다!






붉은 축에서 뻗어나가는 호주의 역사


호주 국립 박물관이 위치한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더불어 대표적인 계획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행정 건물들이 의회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구조인 캔버라의 설계는 호주를 대표하는 호주 국립 박물관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색색의 구조물과 호수로 이루어진 ‘호주의 꿈’이라 불리는 정원에 세워진 전시관들은 연관성 없이 배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마치 롤러코스터 레일을 연상시키는 붉은 축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원주민들의 역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호주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박물관의 상징성을 건축 양식에서부터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축은 직선, 곡선을 가리지 않고 박물관 부지 전체를 관통하여 때로는 박물관 건물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박물관은 관람객들의 동선을 방해하고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정통성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미국의 건축이론가 찰스 젱크스가 그의 책에서 저술한대로 ‘극한의 다원주의를 구현’하는 데에 성공해 박물관은 설립 의도에 맞게 호주를 넘어 전세계인에게 그 매력을 뻗치고 있습니다.




▲ 단연 눈에 띄는 거대한 축은 박물관의 상징이다



원주민부터 이주민까지, 모두를 품는 박물관


1980년에 설립된 호주 국립 박물관은 호주의 원주민이라 알려진 아보리진의 유물부터 호주 예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까지 호주에 관련된 다양한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캔버라의 역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지만, 각 섹션 별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호주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01년에 완공된 현재의 건물들은 테마 별로 다르게 설계되어 다양한 색상과 구조를 자랑하고, 벽면에는 거대한 브라유식 점자로 된 비밀 메시지들이 적혀 있어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점자를 따라가다 보면 ‘집’이라는 뜻을 가진 전 세계의 언어를 만나볼 수 있는데, 한글로 쓰인 ‘집’을 만나는 순간 자연스레 드는 반가움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 호주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박물관 내부 모습



박물관의 내부에서도 외부에서 보이던 중심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양쪽으로 소장품들이 늘어선 전시관 천장에는 자유로운 형태의 하얗고 붉은 축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전시의 순서대로 호주의 이주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람의 순서를 안내하는 도슨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전시관의 건축양식은 호주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참고했는데, 이 부분은 이후에 격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전시관 사이를 잇는 외부 전시관 역시 호주 국립 박물관에서 놓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외부 전시관 또한 중앙에 위치한 호수를 중심으로 호주에 관한 여러 상징물들이 다방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호주의 각 지역이 디자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거대한 지도와 평범한 길처럼 보이지만 끝이 하늘로 말려 올라간 조형물 등은 각 전시관을 이동할 때마다 관람객들이 눈을 즐겁게 만듭니다.


국립박물관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하나의 미술관이라 해도 손색없는 예술성까지 겸비한 호주 국립 박물관은 가장 도발적인 공공 건축물로서 호주의 길지 않은 역사를 짧지만 빛나는 역사로 재창조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주민 학대라는 역사적 상처를 가지고 있는 호주의 역사처럼 박물관은 비판의 시선도 함께 안고 있지만, 다원화를 꿈꾸는 호주의 정신처럼 호주 국립 박물관 역시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지식의 요람으로 거듭나는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 호주 목축업의 상징인 퀸즐랜드의 풍차가 돌아가는 내부 모습



호주 국립 박물관의 전시품들


호주의 역사는 이주민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원주민 박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주 국립 박물관은 불행한 과거를 묻어두는 대신 오히려 조명하여 반성과 통찰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원주민들의 생활부터 식민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호주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원주민들의 생활

약 6만 년 전부터 호주에 살았던 원주민들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으로 뽑히는 아보리진은, 아시아에서 바다를 건너 와 오스트레일리아에 부족 사회를 이루어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8천 년경 최초의 사냥 도구인 부메랑과 창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신앙을 바탕으로 노래와 춤, 예술 활동을 했습니다. 호주 국립 박물관에서는 이들의 생활 소품에서부터 원주민의 예술을 이어받은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Alick Tipoti 作 - Sugu MAWA 문어 마스크(2011)

원주민들의 유물 재현 | 유리 섬유




▲ Anatjari Tjakamarra 作 제목없음(1972)

원주민들의 유물 재현 | 나무에 합성 페인트



이주민의 역사, 식민지의 역사

1768년 영국의 선장이 호주에 뿌리를 내린 이후 죄수들의 유배지가 필요했던 영국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식민지를 건설해 1788년에는 죄수들과 이민단을 호주에 상륙시킴으로써 백인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민족간의 갈등의 역사는 호주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호주 국립 박물관은 갈등을 해결하는 메시지를 담은 여러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  (좌) 식민지 당시 동전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발행된 동전

▲  (우) 식민지 당시 이주된 죄수들이 가지고 있었던 죄수 토큰



호주의 현재

세계대전 이후 호주의 반 원주민 정책은 폐지되었고 원주민에게도 일정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호주 국립 박물관에서는 단순히 호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일구어온 환경, 산업적 발자취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을 구성해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서의 호주를 정착시키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사용된 큐피 인형




▲ 호주의 대표적인 자동차 모델 홀덴



역사는 짧지만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관점으로 박물관의 의미를 재구성한 호주 국립 박물관은 오늘도 많은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물이 지니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도 인류에게 감동을 주지만 역사를 개척해나가는 호주인들의 마인드도 또 하나의 감동으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