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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식

[Start, New Sindoh] History② 신도리코 역사 – 90s, 00s, 10s

 

신도리코가 걸어온 지난 61년을 함께 되돌아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상을 살펴보는 [Start, New Sindoh] 여덟번째 시간입니다. 이어서 오늘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신도리코 역사에 이어 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역사를 깊게 살펴봅니다.

 

1990’s 기술이 큰 기업

 

1990년대는 대기업들의 복사기 사업 진출로 사무기기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그러나 신도리코의 기술력과 전문성, 전국적인 판매망과 서비스는 타사에 비해 압도적이었는데요. 이 시기 신도리코는 기술연구소 준공(1992년), 아산공장 본관동 준공(1996년), 서울본사 리노베이션(1999년)을 통해 개발과 생산, 영업에 대한 인프라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했습니다. 복사기 완제품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 때였습니다.

 

앞서가는 전문 기업

 

▲강남구 논현동에 서비스센터 개설(1992.02.)

 

1990년대를 앞두고 신도리코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했습니다. 정보화의 가속에 따른 사무기 기 대중화는 기회였고,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복사기 사업 진출은 위기였지요. 시장 전망은 밝았지만, 과열 경쟁은 피할 수 없었는데요. 신도리코는 1960년 설립 이후 사 무기기에 매진한 결과 대기업보다 앞서는 기술력과 전문성을 기를 수 있었고, 전국적인 판매망과 서비스 조직으로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또한 기술, 원가관리, 브랜드관리, AS, 생산 등 전 부문에서 내부혁신도 활발했습니다.

 

그 결과, 자본을 앞세워 시장에 진입했던 대기업은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신도리코의 시장점유율은 굳건했습니다. 오히려 1992년을 기점으로 신도리코의 시장점유율은 40%까지 상승했으며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여 2000년에는 전 체 시장의 50%를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기술력으로 인정받다

 

▲독자 설계 생산한 복사기 FT 1000(1991.01.)

 

대기업과 경쟁에서 신도리코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기술적 우위였습니다. ‘전문회사는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만큼 앞서갑니다’라는 당시 광고 카피는 전문성과 기술력에 대한 회사의 자신감을 보여줬습니다. 신도리코는 기술연구소 설립, 연구인력 대거 확충,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대기업에 밀리지 않는 기술을 보유함으로써 전문기업의 아성을 구축하고,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첨단기술의 복합체인 복사기 개발은 광학을 기본으로 전기, 전자, 기계, 화학 등 고도의 융합기술이 필요한데요. 1991년 1월 국내 최초로 독자 설계한 복사기 FT 1000 개발 성공은 신도리코 기술개발의 백미였습니다. FT 1000 개발은 훗날 신도리코가 완제품 복사기 수출에 도전하는 디딤돌이 되기도 했죠.

 

▲기술연구소 준공(1992.03.)

 

1992년 3월에는 최첨단 연구환경을 갖춘 기술연구소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FT 1000 개발이 막바지로 치닫던 1990년 11월 신도리코는 기술연구소 증축에 들어갔습니다. 새 연구동 증축 이전 기술연구소는 10년 동안 복사기 40종, 팩시밀리 30종, 소모품류인 소터, 피더 등 주변기기 개발 등 우수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출범 10년 만에 새롭게 증축된 연구소는 환경실험실, 무향측정실, 전자파장해측정실, 화공파일럿 실험실과 각종 공정 실험실을 새롭게 갖추면서 신도리코 기술 발전에 또 다른 획을 그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용지걸림 자동 제거 복사기 NT4000시리즈(1994.07.)

 

이후 기술연구소의 땀과 열정이 녹아 든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었습니다. 1994년 7월 1일 첫 선을 보인 NT4000 시리즈는 복사기 사용자의 가장 큰 불편사항인 용지 걸림을 자동으로 제거하는 기능을 세계 최초로 장착해 소비자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신도리코도 이 점을 셀링 포인트로 광고했고, 시장은 폭발적으로 반응했습니다. NT4000시리즈는 전체 복사기 수요 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대외적인 평가도 매우 우수하여 1994년 신사업경영원 선정 올해의 뉴미디어상품, 1995년 한국능률협회 히트상품에도 선정되었습니다.

 

높아진 위상, 달라진 공간

 

▲아산공장 본관동 준공(1994.04.)

 

신도리코의 성장으로 아산공장도 빠르게 변모해나갔습니다. 1994년에 착수해 96년 완공된 아산공장 본관동은 아름다운 예술품, 곳곳에 배치된 문화공간, 건물 2층에서 1층으로 쏟아지는 인공폭포, 카페테리아를 닮은 휴게공간, 극장식 강당 등 아름다움이 가득한 건축물로 태어났습니다. 외부인에 공개되지 않는 공장 내부에 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건축물의 완성도는 높았는데요. 1998년에는 조선일보가 선정한 ‘한국건축물 걸작선 20’에 선정되었습니다.

 

▲신도리코 서울본사 리노베이션(1999.07.)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서울본사 본관동 리노베이션과 공장의 증·개축 공사도 완료했습니다. 2호선 전철역 성수역과 5분 거리의 본사와 서울공장은 리노베이션 후 성수동의 랜드마크 빌딩으로 떠올랐습니다. 낙후된 공단이라는 편견을 깨고 태어난 건물은 원목이 깔린 마룻바닥과 긴 회랑이 인상적인 신도문 화공간을 비롯해 옥상정원, 쾌적한 카페테리아를 갖 춘 정갈한 공간으로 다시 꾸려졌습니다.

 

서울본사가 새롭게 태어난 직후 아산공장도 대공사에 착수했습니다. 본격적인 프린터 개발에 맞추어 레이저프린터 생산을 위한 아산공장 증축 설계가 이뤄졌고, 기울어진 경사면과 표고 차의 한계를 용이하게 활용한 증축동이 탄생했습니다. 특히 신조립동은 모든 지면과 만나도록 설계되면서 원활한 물류의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산 본관동 설계와 마찬가지로 비탈진 지형을 강점으로 승화한 것이었죠. 달라진 아산공장 본관동과 서울본사 리노베이션, 아산공장 신조립동은 모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으며 대내외 에 우수성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기업공개 착수 및 수출 드라이브 전략

 

▲신도리코 주식상장(1996.12.)

 

신도리코는 기업공개에 착수해 199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습니다. 창립 이래 단 한 차례 적자 없이 성장을 지속한 기업, 복사기와 팩시밀리 분야에서 국내 1위를 지키는 기업, 수출 호조로 사상 유례없는 흑자행진 기업으로 주목을 받은 신도리코는 주식시장에서도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는데요. 1997년 5월 한국능률협회에서 시행한 상장사 기업평가에서 신도리코는 종합 4위, 중형사 부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특히 안정성 측면에서 종합1위를 달성함으로써 재무수익성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일억불 수출의 탑 수상(1995.11.)

 

신도리코는 IMF 외환위기에서도 오히려 더 빛을 발했습니다. 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거래보증을 위한 최소한의 은행 차입금만을 사용해 이자 부담을 최소화했고, 1996 년 기업공개를 통해 모집한 공모자금을 활용해 이자 수익을 늘려 기업의 안정성을 높였습니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으며 외환위기에서 효자기업으로 우뚝 서기도 했습니다. 1997년 결산에서 부채비율은 34%, 경상이익률은 21.1%에 달하는 등 우량한 재무구조를 자랑했습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더 컸던 1998년에도 흑자는 계속되었으며, 창업 이후 무적자 행진을 외환위기의 풍랑 속에서도 이어갔습니다.

 

신도리코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전략을 시 행했습니다. 그 결과 1995년 11월 30일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일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습니다. 1986년 천만불 수출의 탑 이후 10년 만에 올린 쾌거였는데요. 우상기 선대회장은 같은 해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습니다.

 

프린터 비즈니스 시작

 

IMF 외환위기를 수출로 극복한 신도리코는 프린터 수출을 기업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삼았습니다. 프린터 수요의 급증을 예견했던 신도리코는 1991년부터 프린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첫 출시 제품은 미국 IB과 공동개발한 도트매트릭스 프린터 IBM 5577HK였습니다. 그리고 IBM 프린터 부문이 1991년 3월 분사해 설립한 렉스마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렉스마크가 생산하는 레이저프린터와 PC 소모품, 타자기 등을 국내에 공급하는 판매·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신도리코는 1992년 6월 정보기기사업부를 신설하고, 프린터 사업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1993년 6월에는 흑백과 컬러 잉크젯 프린터를 출시함으로써 기종 다양성을 내세워 월 3,000대 이상 판매하며 프린터 시장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프린터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결심한 경영진은 1999년 8월 렉스마크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제안했습니다. 신도리코가 세계시장에 출시할 제품을 개발·생산·공급한다는 미래지향적 조건이었다. 신도리코가 준비한 제품사양과 설계 콘셉트, 시제품에 렉스마크는 만족감을 표했고, 2000년 11월 29일 렉스마크와 3억 달 러에 달하는 레이저프린터 설계위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신도리코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2000’s 디지털, 그리고 글로벌

 

모바일과 인터넷이 보편화된 2000년대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 신도리코의 MFP(Multi Function Product) 러시안 시리즈는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A3 제품으로 통했습니다. 또한 블랙풋을 시작으로 A4 분야에서도 비약적 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글로벌 생산기지 칭다오공장 가동을 비롯해 글로벌 브랜드 SINDOH 선언 등 세계시장을 향한 본격적인 경쟁이 이어졌습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

 

▲독자기술로 개발 생산한 디지털복합기 디지웍스 출시(2003.08.)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복사, 팩스, 스캔 그리고 프린트 기능이 하나의 제품에서 구현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델은 처음에는 디지털복사기로 불렸지만, 점차 디지털복합기라는 말로 대체되었죠. 제품의 다기능이 강조되었고 MFP(Multi Function Product) 또는 올인원 (All In One)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신도리코는 1997년에 자체 개발 디지털복사기를 생산할 정도로 디지털 시대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복합기의 생산, 수출 속에서 서로 신뢰가 쌓인 신도리코와 리코는 2001 년 7월 러시안(Russia)의 세 번째 모델에 대한 3억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2003년 8월, 개발명 ‘러시안C3’는 출시와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A3 MFP가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디지웍스(Dgwox)’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출시 당시 디지웍스 제품에 대해 한 언론은 “신도리코가 독자개발 생산한 디지털복사기 디지웍스시리즈의 출시는 국내 디지털복사기 개발 및 생산능력이 완전히 독립했음을 의미한 다. 선진국과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복사기는 몇몇 있었으나, 100%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것은 디지웍스가 처음이다”고 소개했습니다. 디지웍스는 국내시장에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이끌었습니다.

 

▲레이저프린터 블랙풋(LP 1600) 출시(2001.11.)

 

레이저프린터와 A4 복합기 부문도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국내시장에서 블랙풋 (Blackfoot)이라는 브랜드로 레이저프린터를 발매하며 큰 성공을 거둔 것인데요. 2002년에는 신도리코의 매출에서 레이저프린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2000년 851억원이던 수출은 2003년 4,000억원에 근접하며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성과로 2004년 11월 26일 거행된 제41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신도리코는 삼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 함과 동시에 금탑산업훈장도 함께 수훈했습니다. 2004년 신도리코가 기록한 최종 수출액은 약 3억 9,000만 달러였습니다.

 

우상기 선대회장의 영면

 

▲우상기 선대회장 영면(2002.03.)

 

2002년 3월 17일, 가헌 우상기 선대회장이 84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신도교역을 창업해 신도리코를 국내 최고의 종합사무기기 기업으로 키운 그의 타계는 경제계에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생전 돈독한 정을 나누었던 김상하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애도의 마음과 함께 생전의 발자취를 추모사에서 절절히 풀어냈습니다.

 

“선대회장님께서 해내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복사기와 팩시밀리’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 일류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배움을 소중히 하신 회장님께 서는 당장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사업 확장보다는 나라를 위한 경영, 미래를 위한 기업경영을 해오셨습니다. 그 결과 회장님의 얼이 서린 여기 신도리코가 세계적 인 IT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1919년 개성에서 태어난 우상기는 1939년 개성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이후 20여 년간 소상인으로서 개성상인의 자세를 몸으로 습득하고, 경영자로서의 현실 감각을 익혔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복사기 수입 판매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짧은 시간 기술개발을 통해 자체 생산역량을 갖춘 추진력으로 우리나라 사무자동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단 한 번의 후진도 적자도 없는 기업의 길을 일구면서도, 성공에 취하지 않고 ‘나라와 직장과 사람을 사랑한다’ 는 경영철학으로 기업가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특히, 고도 성장기 많은 기업들이 행했던 차입에 의존한 문어발식 성장을 지양하고 40여년 간 사무기기 한길을 달려 온 선대회장의 신념은 복사기 팩시밀리의 국내 1위와 더불어 관련 기술에 대한 질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향후 신도리코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로 나아가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과 경영혁신 프로젝트

 

▲창립 43주년, 우석형 사장 신도리코 및 관계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2003.07.)

 

창립 43주년 기념일인 2003년 7월 7일. 우석형 사장이 신도리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17년간 대표 이사 사장으로 재임하며 기술연구소 확장을 비롯해 아산공장 경쟁력 강화, 국내영업 시스템 개선 및 앞선 기업문화를 이끌어온 그의 회장 취임은 변화와 혁신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의미했는데요.

 

신도리코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적극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았는데요. 생산·물류·재무·회계·영업·구매 등 모든 업무를 망라하는 프로세스 통합작업인 ERP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 도입에 착수했습니다. 회사의 양적인 성장과 함께 내실과 문화적 개선도 진행됐습니다. 2002년 C&F Clean & Friendly 실시는 그 노력 중 하나였는데요.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연구개발, 생산, 영업, 서비스, 경영관리 등 각 부서간 직원들의 교류 및 협업을 위해 각 부문별로 1명씩 모아 작은 활동조를 편성하여 사내 청결 또는 이웃돕기 활동을 벌였습니다. 2003년에는 환경경영에 대한 의지를 담아 Green Wave를 발표했으며, 2006년에는 직원간 서로 감사 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Thanks Wave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CSR을 위한 재단들도 재정비하여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신도리코장학회와 가헌과학기술재단은 2004년 가헌 신도리코재단으로 일원화했고, 1994년 설립한 상영재단과 1996년 설립한 육영재단은 같은 시기 상영재단으로 단일화했습니다.

 

Rush, 칭다오

 

▲칭다오공장 준공(2003.10.)

 

2003년 10월 가동을 시작한 칭다오공장은 신도리코 성장에 있어 큰 역할을 맡았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위상을 높여가던 시점 신도리코는 중국 진출을 결정했습니다. 2000년을 전후해 성수동 공장과 아산공장에 생산시설을 대거 확충했음에도 디지털복합기와 레이저프린터 생산을 전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요. 더욱이 수출 경쟁력을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 확보도 중요했습니다.

 

이에 회사는 2002년 1월 CPG(China Project Group)를 출범하고 중국 진출을 모색했습니다. 투자환경 조사, 경제인프라 조성 분석, 중국 정부의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최종적으로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칭다오 경제기술개발구로 확정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논의 끝에 300,000㎡의 부지를 확보한 신도리코는 중국 진출 결정 불과 4개월 만인 2002년 5월 공장 설계를 완성하고 2003년 10월 15일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본사 파견 직원 20명과 사전에 교육을 마친 300명의 현지 직원이 생산에 투입되어 시행착오를 잘 극복하며 생산 2개월 만에 카트리지 10만대를 생산했습니다. 생산성을 확인한 직후 신도리코는 3개월 만에 레이저 프린터 생산라인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이미지 카트리지 50만대를 돌파하는 가파른 생산성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신도 본사를 방문한 칭다오시장 일행(2010.12.)

 

칭다오공장은 건설 당시부터 중국 정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인간중심의 건축물로 건설된 칭다오공장은 ‘공장 같지 않은 공장’으로 훌륭한 조형미를 갖췄고, 3개의 정원을 비롯한 다양한 휴식공간, 잔디광장의 쾌적한 시각적 효과도 돋보였는데요. 칭다오시가 대외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견학코스로도 이용할 정도로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장이었습니다. 중국 중앙방송인 CCTV는 성공적인 외자 유치기업으로 신도리코 칭다오공장을 선정, 방송을 필두로 칭다오와 산둥성 방송국도 앞다투어 ‘가장 아름다운 공장’, ‘직원 복지가 좋은 기업’으로 칭다오공장을 보도했습니다.

 

2006년 7월에는 칭다오 2기공장을 완공했습니다. 해외 파트너와의 협력관계가 확대되면서 생산량이 증가 함에 따른 결정이었는데요. 향후 생산 증가에 대비해 1기 공장과 맞닿은 부지를 확보한 신도리코는 2005년 3월 2기공장 건설에 착공해 1년 6개월 만에 완공했습니다. 2기 공장은 건물의 효용성을 고려해 직사각형 2층 건물로 설계했으며, 물류 흐름의 최적화를 실현하였고 아울러 수경원, 석정원, 청송원 등 실내정원을 조성해 공장이 갖는 건조함을 최대한 완화했습니다.

 

▲칭다오공장 가동 2개월만에 이미지 카트리지 10만대 생산(2003.12.)

 

칭다오공장은 연간 고속 레이저프린터 디지털복합기 및 주변기기 150만대, 이미지 카트리지 400만개, PCB 4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인 능력을 갖췄습니다. 이 같은 생산력을 말미암아 2008년 12월에는 칭다오시 경제기술개발구가 선정하는 ‘2008 수출입 최우수 기업상’을 수상했습니다. 2009년 12월에는 시 정부로부터 감사 패를 받았습니다. 칭다오 시장이 신도리코 서울본사를 찾아 감사를 표하고 협업 확대를 논의했습니다.

 

솔루션으로 솔루션을 풀다

 

▲상업용 디지털 인쇄시장 진출을 위해 코닥과 양사 협력제휴(2007.11.)

 

사무기기는 오피스 네트워크와 연동하여 새로운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화에 따 른 결과였는데요. 고객 맞춤형 솔루션 제공이 바로 업계의 경쟁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신도리코는 2002년 조직한 DS영업부를 2006년 솔루션영업부로 재편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했습니다. 사무기기를 개발해 생산·판매하는 영역을 넘어 고객의 사무환경을 진단하고 분석해서 고객에게 최적의 오피스 사무시스템을 설계・구축 ・관리하는 오피스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입니다. 2006년 논스톱솔루션(Nonstop Solution), 2007년 마이솔루션 (My Solution)으로 광고, 마케팅을 강화하며 고객을 향한 신도리코는 자사의 최신 솔루션을 발표하고 임직원 교육도 심화했습니다. 2008년에는 솔루션개발부를 신설해 기술개발 강화와 사업 부문의 확장을 도모했습니다.

 

그 결과 기업보안 강화에 따른 사원증 인증 솔루션을 개발했고, RFID 신분증은 물론 손가락 정맥까지 인식하는 사용자 인증 보안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모바일 보급 확산에 따라 스마트폰에서 출력을 보내면 기업 내 복합기 어디 에서나 문서를 출력할 수 있는 U-print 솔루션과 문자 인식 기술, 복합기 신뢰 스캔 기술을 활용해 전자결재에 효과적인 전자문서화 솔루션도 개발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와 오너십 제품 출시

 

▲글로벌 브랜드 SINDOH 선언에 따른 New CI 발표(2008.11.)

 

2008년 11월 3일 신도리코 는 글로벌 브랜드이자 새로운 CI인 ‘SINDOH’를 발표했습니다. SINDOH는 기업 이니셜 ‘SINDO’에 ‘H’가 더해져 탄생했는데요. H가 묵음이라 발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여섯 글자의 안정성, 다양한 기업철학을 함축한 선택이었습니다. SINDOH의 H에는 Human, High technology, Harmony의 기업정신과 함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기업 비전을 형상화했으며, 국내 NO.1 사무기기 회사 SINDORICOH 시대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했음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영국 디자인 그룹 탠저린과 제품디자인 제휴(2008.11.)

 

글로벌 브랜드 SINDOH 선언과 함께 오너십 제품 개발도 진행했습니다. 기업의 얼굴이 될 제품이기에 선택은 신중했는데요. 반세기 신도의 모든 기술 역량이 집적된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A4 레이저프린터 ABBA, A4 복합기 OAK, A3 복합기 NEST 3종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세계시장에 내놓은 SINDOH 브랜드 제품이 었기에 디자인에도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영국 디자인그룹 탠저린(Tangerine)과 협업하여 독일 Reddot, 독일 iF, 미국 굿디자인이 라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제품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A3솔루션, 동급 대비 작은 크기와 친환경성 등 신도의 기술력까지 입증했습니다.

 

경영자의 큰 수상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2013.05.)

 

2000년대 신도의 성장은 눈부셨습니다. 특히 최고경영층의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높았는데요. 2004년 정부로부터 기업인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을 때, 한국경제는 ‘신도가 디지웍(Dgwox)로 미국과 유럽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고 알렸으며 서울경 제에서는 ‘신도리코 디지털복사기 40개국 수출’을 헤드라인으로 잡아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석형 회장은 창립 50주년이던 2010년에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선대회장의 대를 이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다산경영상은 탁월한 경영실적과 훌륭한 기업문화를 일궈낸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경영인 상으로 평가받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선정 위원회는 신기술을 향한 열린 시각으로 사람들에게 이로운 실용적 기계를 개발해온 신도의 업적과 제2 창업 에 버금가는 기업가 정신을 높이 샀습니다. 한국능률협회에서 수상하는 한국의 경영자상은 신도 가 1978년 수여한 이후 두 번째 수상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영자상은 매년 기업 경영 실적이 탁월하고 올바른 기업인상 정립에 공헌한 경영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제도로 지난 1969년에 제정됐다. 주최측인 한국능률협회는 신도가 사무기기 제조회사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솔루션 회사로 거듭 성장·변화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2010’s 2D & 3D의 길

 

신도는 2D 비즈니스 경쟁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새로운 3D 비즈니스를 모색했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변화였는데요. 글로벌 진출을 위한 많은 노력을 진행하였고, 칭다오공장에 이어 하노이공장을 가동함으로써 글로벌 생산기지가 확충되었습니다. 기존 2D비즈니스에서는 글로벌 디자인 신기종들이 론칭되었으며, 3D 비즈니스에 서는 컨슈머용 3D프린터 출시를 시작으로 프로페셔널용에 이어 대규모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인더스트리용까지 개발했습니다.

 

글로벌 신도

 

▲미국 ITEX Show 2012 참가(2012.04.)

 

2012년 10월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샬럿(Charlotte)에 신도 미국판매법인을 설립했습니다. 2012년 4 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IT기기 전시회 ITEX에서 미국 바이어들의 요청으로 N700 시리즈와 M400 시리즈 수출계약이 이뤄진 것이 계기였습니다. 미국 판매법인 설립을 앞둔 10월 8일에는 아산공장에서 N700 시리즈, 10월 15일에는 칭다오공장에서 M400 시리즈의 미국 진출 기념 출하식이 열렸습니다.

 

2014년 11 월에는 미국의 딜러와 고객을 위한 로드쇼를 진행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베이커스필드, 시카고, 뉴욕, 애틀 랜타, 샬럿 등 6개 도시에서 펼쳐진 로드쇼에는 신도의 A3 컬러복합기 D200, A4 흑백복합기 M611가 주로 소개되어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D200의 우수한 화상과 M611의 고속 출력 및 모던한 디자인은 많은 딜러의 주목을 받아 신도의 브랜드를 미국시장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4개국에서 글로벌 브랜드 론칭(2015.05.)

 

신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나갔습니다. 2015년 5월에는 카타르, 오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중동 4개국 론칭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유럽은 각종 전시회 참가로 구매자와 딜러의 상담 접점을 넓혔습니다. 적극적인 브랜드 론칭과 전시회 참가로 인한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판매가 뒤를 따랐는데요. 2016년 1월에는 스페인 파트너인 GM Technology가 지방의회 와 법원에 A3 흑백복합기를 대량 납품했고, 파키스탄 파트너도 해당국 수자원공사 입찰 성공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창의적 공간으로의 변화

 

▲창립 50주년 기념행사(2010.07.)

 

창립 50주년을 맞은 2010년 신도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코엑스 오디토리움을 빌려 전 직원 부부동반 만찬으로 진행했습니다. 또한 5월 아산공장에서 성대하게 열린 신도가족 행복나누기, 6월의 영업본부 백두산정도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행사였습니다.

 

새로운 50년의 첫해인 2011년은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었는데요. 밖으로는 오피스솔루션의 확대가 두드러지고, 안으로는 오너십 신제품 개발이 그 열매를 꽃피웠습니다. 일터가 임직원의 창의력이 발아되는 토양이라는 생각을 품은 경영진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건축안을 마련하고, 서울본사를 대대적으로 재편했습니다. 우선 본관동의 과거 생산라인 공간을 현대식 오피스 시스템으로 리모델링했습니다. 물류창고로 사용하던 보관 동은 C&F동으로 명명하고, 1층은 전시장, 2층은 교육 장으로 꾸며 전시와 교육 여건을 확충했습니다. 1985년 그라드코 수출을 위해 지은 소터공장은 연구동으로 재편함으로써 개발공간에도 여유를 두었습니다. 2013년 상반 기에는 연구동 확장이 마무리되어 휴게와 후생 공간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신도 50주년 기념 역사관 개관(2012.08.)

 

비슷한 시기, 아산공장도 의미 있는 공간을 열었습니다. 우상기 선대회장의 10주기를 앞둔 2012년 8월 16일 신축 A동에 신도 역사관을 새롭게 조성한 것인데요. 창립 50주년 역사관은 1960년 창사 이후 50년 역사를 정리한 통사관과 테마관, 창업자인 고 故 우상기 선대회장을 추모하는 가헌홀, 다양한 관련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New CI 발표

 

 

글로벌 제품 라인업을 강화한 신도는 이에 상응해 2013년 11월 19일 글로벌 브랜드인 새로운 CI ‘Sindoh’ 를 발표했습니다. New CI ‘Sindoh’는 딥블루 컬러의 굵은 서체로 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오피스솔루션 기업의 전문성을 나타냈습니다. 뫼비우스 문양의 삼각 모티프는 신뢰가는 전문성, 남다른 디자인 감각, 고객만족을 위한 사려 깊은 비즈니스 스타일을 표현했습니다. 오피스솔루션 분야의 핵심역량을 강화하여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로 도약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새로운 기업 슬로건 ‘Unmistakable 명확함의 자신감’도 함께 발표했습니다.

 

솔루션의 가치

 

2011년 업계 최초의 CCM 인증은 신도가 국내 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앞섰다는 사실을 입 증했습니다. 서비스와 함께 영업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솔루션이었는데요. 사실 경영정보시스템이라 불리는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2000년 대부터 사무기기 시장은 요동쳤었습니다. 대기업과 금융권의 총무 부서에서 구매하던 관행이 점차 전산실이나 인프라 관련 부서로 옮겨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신도에 아주 큰 호재였는데요. 국내기업으로서 연구개발 및 전산인력이 풍부했던 신도는 선제적으로 고객지향 솔루션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2006년 만들어진 솔루션사업부에서는 대기업·관공서·금융권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 개발을 전담했습니다. 문서관리와 정보보안을 기반으로 각 오피스의 특색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제안, 적용하는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대기업의 계열사인 유명 SI업체처럼 신도의 솔루션 개발자들은 고객사 장기 출장을 통해 현지 전산망에 신도 장비들을 적용해 나갔습니다. 또한, 이 시기 중소기업의 스마크워크를 위한 개발도 병행했습니다. 2006년 선보인 NS 1000과 2012년 선보인 오피스원, 2015년 문서보안에 초점을 맞춘 시큐원은 솔루션 개발 역량이 담긴 오피스 운영체계였습니다. 오피스솔루션은 점차 필수라고 인식되면서 MPS(Managed Printing Service)는 기본이 되었고, 이후 점차 다양화된 사무환경에 따라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어 솔루션이 다양화되었습니다. 신도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기업의 관심 부분을 파고들었습니다.

 

제품개발 역량 강화

 

▲자체 개발 A3 복합기 N610 시리즈 출시(2016.09.)

 

신도는 신제품 개발역량 강화를 위해 2011년 말 글로벌 제품수명주기관리 PLM 시스템 개 발에 착수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연구소 창립 이후 R&D 부문 IT 투자 최대 규모로, 지멘스의 PLM 솔루션 제품을 도입한 것인데요. 2012년 R&D 부문부터 순차 적용해 전사로 확대, 2013년 PLM 시스템 적용을 최종 완료했습니다. 연구개발력 향상을 위한 글로벌 시스템 경쟁력을 갖 추기 위해 노력한 신도는 앞서 공급망관리 SCM(Supply Chaim Management), 전사자원관리 ERP에 이어 PLM도 글로벌 표준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글로벌 개발 협업 속도를 높여 개발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습니다.

 

시스템 구축 이후 신도는 주력 제품인 프린터 등에 쓰이는 전기·전자, 광학, 기계설계, 토너 등 각 기술 개발인력이 실시간 협업했습니다. 아울러 PLM 시스템 구축으로 개발 이력 을 축적 및 활용하게 되었고 개발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전개

 

▲중국 현지 사무기기 박람회(2015.05.)

 

신도가 방향을 수정하고 지역의 판매상들과 접점을 넓혀가면서 중국의 대형 사무자동화 기기 대리점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매출은 2016년 25%, 2017년에 30% 상승했고, 2018년 전년 대비 73%로 큰 폭 성장하며 가능성을 높였는데요. 2018년 의 중국판매법인의 성공에는 이전 해인 2017년 10월 중국판매법인이 칭다오공장 안으로의 이전이 있었다. 칭다오공장 이전으로 영업조직 구성원에게 자사에 대한 연대감을 높이고, 생산조직에는 영업 직원의 에너지와 열정이 전이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칭다오공장은 2003년 생산을 시작해 10년 만인 2013 년 3월 프린터 300만대, 복합기 68만대, IC카트리지 367만개를 양산했으며, 신도의 주력 생산기지로 최고의 활약을 이어갔다. 아울러 2014년 8월부터는 A4 제품인 김렛(Gimlet) 생산을 시작으로 카라, 파인트리 등 차세대 제품을 양산하며 생산능력을 높였습니다.

 

하노이의 꿈

 

▲하노이공장 전경(2016.)

 

2014년 7월 5일, Sindoh VINA 베트남법인 착공식을 시작으로 신도의 제3의 생산거점인 하노이공장 건설이 막을 올렸습니다. 하노이공장은 멋진 외관과 업무 효율을 위한 공간 배치로 주목받았습니다.

 

하노이공장은 완공 직전부터 시험생산을 시작해 2015년 3월 30일 첫 생산제품인 대용량 스테이플 피니셔의 출하식을 열었습니다. 제품 생산을 위해 현지직원을 선발한 신도는 꼼꼼히 생산교육을 시행했는데, 빠른 속도로 기술을 익혀 예상보다 생산 시점이 크게 앞당겨졌습니다. 속도뿐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도 품질은 안정적이었습니다. 2016년에는 하노이 2기공장을 완공하여 세 개의 생산거점을 가지게 되면서 아산공장 70만대, 칭다오공장 150만대, 하노이공장 90만대의 연간 생산능력을 갖췄습니다.

 

새 희망, 3D프린터

 

종이 없는 사무환경 시대 도래와 태블릿 PC 발달 등 오늘날 사무기기 시장은 성숙기를 거쳐 점차 소비 쇠퇴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신도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신도는 미국 3D프린터 제조사 3D시스템사와 계약을 맺고 2013년부터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자체 개발을 위해 2014년 여름 ‘로뎅(Rodin)’ 개발 테마를 시작했는데요. 이는 극비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렇게 2015년 1월 12일,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참가한 신도는 평면의 세상을 넘어 입체의 세계로 진입했습니다. 컨슈머용 3D프린터 시제품을 대중에 공개했기 때문인데요. 첫 제품 출시 당시, 컨슈머 3D프린터 시장의 확실한 강자가 보이지 않았고, 신도의 디자인 아이텐티티가 반영된 진일보한 3D프린터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습니다.

 

▲솔리드웍스 월드 2017에서 Apps for Kids 발표(2017.02.)

 

2016년 1월, 신도는 다시 CES를 노크했고 완제품 ‘3DWOX DP200’로 다시 관심을 증폭 시켰습니다. 곧이어 1월 31일부터 2월 3일까지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3D 설계 부문 전문가 행사인 ‘솔리드 웍스 월드2016(Solidworks World 2016)’에서는 솔리드웍스 CEO인 지안 파올로 바씨가 신도의 DP200을 직접 소개하고, DP200에서 솔리드웍스로 바로 출력되는 호환 솔루션을 대대적으로 소개했습니다. 3D 설계 프로그램에서 별도의 파일 변환 없이 출력 명령을 내리는 세계 최초의 기술이 접목된 프리젠테이션은 업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사용자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3D프린터 대중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한편, 2017년 2월 개최된 솔리드웍스 월드 2107 SolidWorks World 2017에서는 신도와 솔리드웍스가 함께 개발한 소프트웨어인 학생용 3D 소프트웨어 ‘Apps for Kids’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3D프린터 3DWOX DP200(2015.12.)

 

2016년 하반기에는 교육용 시장에 특화된 3DWOX DP201을 출시했습니다. 안정성이 강조된 실리콘 베드가 세계특허를 받은 제품이었는데요. 미국 아마존에서 구매자들의 호평이 쏟아진 것도 이 시기부터였습니다. 신도는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소재를 적용한 3D프린터 ‘3DWOX 2X’를 선보였습니다. Two 노 즐, Two 카트리지 컨셉으로 프로슈머 시장을 겨냥한 3DWOX 2X는 출력의 다양성뿐 아니라 정음성과 완 제품 품질 등으로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신도는 3D프린터 개발과 판매에 역량을 더욱 집중했습니다. 회사 내 주요 개발인력을 3D 개발 담당으로 전 진 배치했으며, 서울본사 내 연구인력 가운데 절반 이상 을 3D프린터 개발전담 인력으로 투입했습니다. 이와 함께 3D프린터 사내 교육사업도 확대하고, 국내 12개 지사 와 500개 파트너를 통해 전국에 3D프린터를 공급했습니다. 판매 이후 신속한 유지·보수 서비스도 제공해 소비자 편의성도 높였습니다.

 

▲Inside 3D Printing Conference & Expo 메인 스폰서 참가(2015.05.)

 

신도는 2018년 6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Inside 3D Printing Conference & Expo’에 메인 스폰서로 참가하며 진일보한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Inside 3D Printing Conference & Expo는 2013년 뉴욕을 시작으로 세계 12개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3D프린팅 전시회였습니다.

 

신도는 3D프린터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제품 외적인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5월부터 토털 3D 솔루션을 제공하는 3D 스퀘어를 오픈하고 3D 설계 및 출력대행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력·스캔·설계·역설계 등 3D가 낯선 고객들에게 쉽고 편리하게 3D프린팅을 활용할 창구를 제공한 것인데요. 이를 위해 신도는 2018 년 6월 서울본사 C&F동 1층에 신도 3D프린터 전시장 ‘Sindoh Additive Laboratory’을 마련했습니다. 임직원의 창의력과 3D 모델링 및 프린팅 능력 향상을 위해 전 직원 교육과 출력 콘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산업용 3D를 향한 전진

 

2019년에는 준산업용 3DWOX 7X와 SLA 방식 Sindoh A1/A1+가 출시되면서 신도의 3D프린터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FFF 방식에서는 진화된 개인용 3DWOX 1과 고급형 데스크탑 방식 3DWOX 1X 및 2X, 준산업용 3DWOX 7X가 기본적인 라인업을 형성하였고, SLA 방식 Sindoh A1/A1+가 출시되어 다양한 산업군을 노크했습니다.

 

신도는 8개의 카트리지가 거치되는 FFF 방식 3DWOX 30X를 개발했습니다. 출력 사이즈가 740×490×150mm로써 신도가 축적한 FFF 기술을 총망라해 산업용에 걸맞은 출력 품질을 갖췄습니다. 이 제품은 고객 맞춤형 자동차 내장재 및 운동화 치구 JIG생산에 대규모로 사용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20년 나온 3DWOX 50X는 1,200×700×500mm로 출력사이즈가 대형화되면서 산업용으로의 활용도가 높아졌습니다. 1m가 넘는 대형 출력물이 오차 없이 완성되는 수준이었죠.

 

▲머티리얼라이즈와 SLS 3D프린터 MOU 체결(2019.11.)

 

2019년 11월 19일에는 독일 프랑 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적 적층가공 전시회인 ‘폼넥 스트 2019’ 현장에서 3D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와 차세대 대형 산업용 3D 프린터 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양 사는 협약을 통해 머티리얼라이즈는 소프트웨어와 제품 설계, 신도는 생산 기술력과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3D 산업계에서 시너지를 발휘해 차세대 대형 산업용 3D프린터를 2020년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2020년 2월에는 미국 테네시에서 개최된 3D 설계분야 이용자 컨퍼런스 ‘3D 익스피리언스 월드 2020’에 서 적층 제조 전문기업 라이즈(RIZE)와 전략적 파트너 십을 체결하면서 신도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라이즈가 보유한 특허기술 증강 증착(Augmented Deposition)은 필라멘트 기반 및 잉크 재료분사 기능을 결합한 기술로 3D프린팅의 산업적 과제인 안전성, 사용 편의성, 지적 사용 건의 보안 등 그 쓰임새가 광범위합니다.

 

▲2018 한국품질만족지수 KS-QEI 인증(2018.09.)

 

신도리코는 1960년 복사기 사업을 시작으로 오늘날 3D에 이르기 까지 변화하는 패러다임과 급 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왔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재편된 사무환경 변화에서도 회사는 기술과 영업을 쇄신하며 성장을 거듭했으며, 제조기업에서 오피스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혁신해왔는데요. 2020년대 그리고 그 이후에 신도리코가 새롭게 써나갈 역사에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