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연재

선으로 로맨틱함을 표현하는 추상화의 대가, 바실리 칸딘스키

안녕하세요, 신도리코의 신대리입니다.


추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칸딘스키는 사물의 형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화가입니다. 선명한 색채와 역동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고 현대 미술사에서 갖는 의의가 큽니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듣는 듯한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통해 무언(無言)의 감정을 작품에 드러내며 현대인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데요. 추상화의 대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 흰색 위에(1923)_조르주 퐁피두 센터



완전한 추상화가 탄생하기까지


바실리 칸딘스키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로 ‘추상화의 창시자’로도 불립니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교에 들어가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성공적인 법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89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전 관람은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전시에서 본 클로드 모네의 작품, <짚단>에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짚단>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 성향이 짙은 그림이었고, 칸딘스키는 그의 미학적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직업을 전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오렌지색(1923)_뉴욕 현대 미술관



칸딘스키만의 완전한 추상화가 탄생하기까지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스케치를 하고 돌아와 아틀리에의 문을 연 순간,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본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림이 거꾸로 놓여 있었기에 발생한 일이었지만, 칸딘스키는 이를 통해 작품이 주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더라도 인상에 남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죠.



추상화로 그려나가는 세상


화가가 된 후 칸딘스키는 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연달아 전람회를 열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가 속한 그룹 중 가장 유명한 ‘청기사’는 1911년 프란츠 마르크와 칸딘스키가 편집한 연간지의 이름인데요. 연간지 ‘청기사’는 당시 전위예술가의 작품이나 어린이가 그린 아동화 등 사람들에게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 작품을 게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 로맨틱한 풍경(1911)_렌바하 하우스 미술관



그 무렵에 칸딘스키의 <로맨틱한 풍경>이 탄생하게 되는데 언뜻 봐서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지만, 캔버스 중앙을 들여다보면 산비탈을 뛰어 내려오는 세 마리의 말과 기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서 추상적 배경 외에 형상을 알아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그렸는데, 훗날 완전한 추상화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과는 사뭇 차이를 보입니다.



▲ 밝은 바탕 위의 형상(1916)_파리 개인 소장



<밝은 바탕 위의 형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어쩔 수 없이 뮌헨을 떠나야만 했던 칸딘스키의 감정이 묻어난 그림입니다. 예술적 전환기를 가져다 주었던 도시 뮌헨을 떠나야만 하는 슬픔이 어두운 색채와 복잡한 형태로 드러나있습니다.



▲ 노랑 빨강 파랑(1925)_조르주 퐁피두센터



<노랑 빨강 파랑>은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그린 그림으로 완전한 추상화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색채에 대한 그의 연구 노력이 빛을 발한 작품으로 이른바 3원색으로 불리는 노랑, 빨강, 파랑을 기본으로 하여 이 색채에서 파생되는 녹색, 분홍, 초록 등을 캔버스에 함께 담아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마에스트로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그릴 무렵은 포비즘이나 큐비즘과 같이 색, 형태의 표현력을 추구하는 그림들이 출현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그림에 영향을 받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일으킬 만한 추상화를 그리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그는 추상화를 음악에 비유하며 마치 지휘를 하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심포니를 이끄는 마에스트로처럼 작품을 완성해 나간 것입니다.



▲ 푸른 하늘(1940)_조르주 퐁피두센터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덕에 그는 자신의 예술론을 설명하고자 할 때 음악에 비유하여 말하곤 했는데요. “예술은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힘찬 것이며, 회화 역시 음악과 같은 힘을 가졌고, 또 그것을 추구해 나갈 수 없다 하여도 단념할 생각은 결코 없다”고 회화에 대한 개념을 정의 내렸습니다. 



▲ 구성 7(1913)_러시아 트레차코프 국립 박물관



뚜렷한 형태 없이 선과 색으로만 이루어진 그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자면 마치 음악을 듣고 있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음으로 재현할 수 없지만, 매력적인 선율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듯 칸딘스키가 구현한 작품 또한 그 특유의 감성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그의 그림이 교과서에 실리며 추상미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작품이 담고 있는 인간의 감정 때문은 아닐까요?



▲ 동심원이 있는 정사각형(1913)_렌바하하우스 미술관



음악과 미술을 사랑했던 칸딘스키는 특유의 색채와 선만으로 로맨틱한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그림 속에 녹아 들어있는 칸딘스키의 감성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